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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교육정책 발표 Announcement about education policies from Liberty Korea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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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오는 4월 15일이 총선을 대비해서  오늘 교육 정책을 발표한 모양이다.  바뀌었던 여러 교육 정책을 이전과 같이 회복시킬 계획으로 보인다. 자사고, 외고나 정시 비중 늘린다는 얘기를 보면 말이다. 일단 교육 정책에 대한 얘기들을 보면 좋은 전략으로 보인다. 지금 제도를 보면 잡음들이 꽤 나타나지 않았는가? 개인적으로 취학연령 낮추는 방안도 괜찮아 보인다. 애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안보내는 부모들 거의 없지 않는가? 이럴 거면 차라리 학교를 빨리 보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차후에 사회 생활도 더 빨리해서 선거 연령 낮아진 거에 대한 대비책도 되고 말이다. 여러 좋아보이는 말이 있어서 크게 가타부타 할 것도 없어보인다. 9월 학기제로 하는 건 저항이 클 것 같긴하다. 보니까 서구권에서 돌리는 시스템 같은데, 이 시스템으로 할 때 어떤 식으로 시스템을 짤 지 궁금하다. 서구권은 9월부터 6월 정도까지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방학같은 짧은 방학 빼고는 거의 스트레이트로 진행하는 식 아닌가? 시스템 돌리는 것도 문제지만 한국 특유의 세는 나이로 따지는 문화 때문에 한국은 나이가지고 말을 높힐지 낮출지 판단하지 않는가? 여기에서 오는 혼란에 대한 대책은 있는지 모르겠다. 잘 정착된다면야 만 나이를 실질적으로 쓰게되는 풍토가 되겠지만 말이다. 이게 계기가 되어 만 나이를 쓰고  한 살 차이로 높히고 낮추는 문화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대신에 상호존중에 대한 관념이 각 개인마다 제대로 박혀야 하지 않을까? 회복시키는 부분도 있지만 필자 생각에 꽤 혁신적인 부분도 있어서 이리저리 말을 해봤다.

중국발 전염병 Epidemic from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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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크게 길게 쓸 생각 없고, 전염병에 대한 경계심을 가질 목적으로 간단하게 쓸 예정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전세계로 퍼지고 있는 모양이다. 검색해보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벌써 이것 때문에 사망자가 생겼다고 한다. 곧 있으면 중국에 큰 명절인 춘절이라고 한다. 사람이 많이 이동하니 병의 전염이 더 심해질 것이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 중에 중국인 비중이 상당히 높고, 이 인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에서 위험할 수 밖에 없다. 이 인원들이 춘절에 중국에 갔다오면 또 어떤 위험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역사적으로 무서운 병으로 알려진 흑사병도 유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춘절이 지나고 이런 병까지 우려해야 되나 싶다. 전염병 때문이라도 중국인에 대한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무시무시한 흑사병도 발원지가 중국이었고, 사스도 중국이었지 않았는가? 관리 못해서 애먼 한국 국민들이 피해보면 안되지 않겠는가.

자유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

어릴 때 부터 계속 들어왔던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민주주의란 단어이다. 민주 ( 民主 ) 이렇게 보면 백성이 주인이란 뜻이고, Democracy로 보면 다수의 지배이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면  다수의 의견이 반영되는 국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쉽게 생각하면 민주주의는 다수결로 볼 수 있겠다. 다수결로 운영되는 나라라면 나라의 구성원이 어떤지에 따라 해당 나라의 부흥과 쇠락이 결정될 것이다. 부흥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별 구성원들이 나라 돌아가는 각 상황에 대해서  합리적인 사고를 하여 판단해야하는 매우 어려운 조건이 있다. 이게 구성원 수나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이 작으면 모르겠는데, 규모가 커지면 앞에 말한 조건을 지키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 많은 인원과 그들이 하는 일의 특성과 사태를  어떻게 일일히 다 파악하고 판단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민주주의 국가라도  분업 시스템이 적용되는 관료제를 적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분업 시스템이란게 기본적으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3권 분립부터 해서 더 나아가서 언론, 시민단체 이런 식으로  국민들 대신 나라의 일을 알리거나 판단해서 처리하는 역할을 하게 만드는 거라 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운영하는 단체는 이기적이서 권력이 오래가면 부패하기 마련이므로, 각 기관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되 상호견제가 가능해야 나라도 제대로 돌아가고 국민들도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부패라는 것을 생각하면, 분업 시스템의 단체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의 방향이 상반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런 기관이 부패한다면, 부패 사실을 국민들이 알 경우.  기관 구성원들이 귀찮아지거나 위험해질 수 있으므로, 진실을 숨기기기 위해 거짓 행위와 언행 형식을 만들 수 있고, ...

짐승과 인간이 느끼는 고통은 같을까? Is suffer between beast and human same?

길 지나다니다 보면 줄에 묶여 다니는 개들을 보고 혹은 우리 속에 있는 소나 돼지, 동물원에 있는 짐승들을 보고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짐승들의 상황을 사람에 맞춰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 평생을 구속된 채로 산다면 고통이 상당히 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짐승은 사람의 먹을 양식이 되기 위해 죽으므로 인간이 그들을 죽이는 절차가 있을 것이다. 그 절차를 직접 본다면 아마 위의 사례보다 더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육체적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니 고통도 어마어마 할 거라고 생각든다. 특히 그 짐승을 인간에 대입하면 그 정도는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짐승의 고통과 인간의 고통의 정도가 같은지도 생각할 수 있다.  인간과 짐승의 특성이 다르니 당연히 다른 점이 있다는 생각은 타당한 생각일 것이다. 그러면 인간과 짐승의 특성을 차이점을 통해 생각해보자. 인간과 다른 짐승과 비교해봤을 때,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두 발로 걸어다니는 짐승들도 있고,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반응하기도 하며, 짐승들도 나름대로 의사소통을 하며 살아가니 말이다. 그럼에도 있는 인간과 짐승의 차이점은 지금 당장 신체감각으로 느껴지지 않는 부분을 인지한다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면, 짐승이 어제 먹었던 먹이를 지금 회상할 수 있겠는가? 소통을 한다고 쳐도 신체 감각으로 인지되지 않는  며칠 전에 봤던 지형지물에 대해 얘기를 하겠는가? 사냥감의 패턴을 파악하고 오늘의 실패를 반성하며 다음 날 어떤 식으로 사냥을 할 지,  대형을 어떻게 짜서 몰아갈 것인지 경우의 수를 파악하면서 개선된 작전 계획을 짜겠는가? 기존 재료로 전혀 새로운 형태와 기능을 갖춘 도구를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짐승들은 이런 거 못할 것이다. 저런 예시들은 추상적 사고로 만들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추상적...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들 Dudes who don't keep the time

둘 이상의 사람이 노는 것이든 일하는 것이든 같이 하고자하는 일이 있으면 약속을 잡아야지 그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시작을 하려면 서로 접할 영역과 동시에 시작할 때를 정해야 할 것이다. 서로 만날 영역을 알고 있다면, 어긋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간의 부분은 알고 있다고 해도 어긋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적어도 약속 구성원 중 하나는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구성원 모두가 동시에 일을 계획대로 완벽히 시작하지 못할 것이다. 심할 경우 구성원 하나가 올 때까지 시작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켜야 할 시간이 있는데, 늦는다면, 그만큼 나머지 약속 구성원들이 계획을 수정하거나 올 때까지 시간을 뺏기는 일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어떤 사람은 인간은 반드시 죽으므로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을 타인의 목숨값을 뺏는다는 얘기까지 한다. 이처럼 시간 약속이란 부분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하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이나 친구 관계 등에서  유독 시간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이 있지 않나? 직장이면 지각하는 사람이 되겠고, 친구 관계면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이 되겠다. 뭐, 사람이 살다보면 한 두 번의 어김은 있을 수 있겠으나, 유독 약속을 안지킨다는 건 어김의 빈도가 잦은 사람을 얘기한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왜 그런 것일까? 또, 이런 인간들의 대처는 어떨까? 우선, 약속 시간을 왜 안지키는 지 생각해보겠다. 일단 구성원들과 엮이는 일이나 장소에 애착이 없는 것 같다. 애착이 없으니 구성원들과 엮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거나 엮이는 일에 일찍 나가는 걸 손해라고 생각하는 마인드가 장착되었고, 이런 마인드가 손해라 생각되는 시간을 줄이고자 자기 딴에는 가장 효율적인게 제 시간 도착이니 그 시간에 맞춰 타이트하게 계획을 짜서 그런게 아닌...

실체와 이미지 Substance and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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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나 여타 시스템을 접하다보면 자신이 알던 이미지와 그 실체가 다른 경우를 많이 본다. 예를 들어 폭행죄를 보면 자세한 내용은 여기 에서 보라. 위의 사진 내용과 같은데,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폭행의 이미지 외에 적용 범위가 상당히 넓음을 알 수 있다. 상대방 허락없이 최면에 걸리게 하거나 담배연기 뿜는 것들도 해당된다는 게 인상적이다. 폭행에서 앞쪽에 수식어를 하나 더 붙인 특수폭행도 보자. 제261조(특수폭행)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제260조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제260조(폭행, 존속폭행) 법 조항은 이런 식이다. 위력을 보인다는 거의 범위나 위험한 물건의 범위가  법에서 정한 기준과 자신의 기준과 다르면 실체와 이미지의 괴리가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볼펜으로 타인을 폭행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볼펜으로 폭행한다는 이미지를 볼펜 대로 사람을 때린다는 걸로 가지면 왜 이게 특수폭행이냐고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볼펜의 글 쓰는 뾰족한 부분으로 눈을 찔렀다면, 그건 특수폭행이 충분히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두 가지 정도만 들었지만 실체와 이미지가 다를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충분한 예인 거 같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원인은 역시 인간 신체의 한계, 뇌로 기억 저장과 한꺼번에 상기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의 한계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뇌도 자기 기능의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들어오는 정보의 일부만 저장해서 실체와 이미지의 괴리가 생긴다고 본다. 그나마 자신의 전문분야의 정보는 정보를 자주 여러번 접하거나 여러 작용을 경험하고 정보 체계가 머리 속에서 정리하기 때문에 그 정보를 입체적으로 보고 실체를 안다고 볼 수 있다. 하지...

친일이 악의 행위인가? Is Japanophile action of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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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부터 일본과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서 반일 감정이 이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다. 그런 현상으로 일본 제품을 사거나 일본 여행가는데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본 관련해서 돈을 쓰는 행위나 일본을 조금이라도 옹호하면 친일파 소리를 듣기도 한다. 우리가 친일이라고 하는 말의 진의는 뭔가? 민족 구성원에게 해악을 끼쳤다고 하는 행위를 기반으로 이름하는 단어 아닌가? 일본에게 먹히고 민족 구성원 전체가 피해를 받았는가  아니면 일부만 받았는데, 그걸 민족 전체가 받은 걸로 날조하는 것일까? 일단 일본에게 먹히기 전의 상황을 보자. 중국에 의존하는 형편없는 국방 수준이었다. 그럼 경제수준은 어떨까? 조선의 수도 한양의 길거리인데, 똥이 널브러져있다. 수도의 길거리를 치우지 못할 정도니 조선의 경제 상황이 좋았을리는 없다. 나라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군인의 식단을 저런 식으로 줬다는 사실을 볼 때, 군대의 부패가 심하거나 경제가 아주 안 좋았던 경우였을 것이다. 전자는 국방이 , 후자는 경제가 좋지 않아서 생기는 일일 것인데, 근데 사실 저 정도면 둘 다 안 좋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게 조선의 국방과 경제 수준이었다. 아무리봐도 독립적으로 나라를 유지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한반도의 상황만 봐서는 확신할 수 없으므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보도록 하자. 아시아 대륙쪽에서 영국과 러시아는 서로 견제해가며 동쪽으로 서로의 영역을 넓혀나갔던 시기였다. 동쪽으로 가다가 러시아가 한반도 쪽으로 남하할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 일본은 이 상황을 잘 이용하여 근대화에 성공했던 상황이었고 말이다. 즉, 한반도 주변은 세력을 넓히려는 제국 주의 야욕으로 둘러쌓였다고 봐야한다. 앞에서 본 조선의 상황과 그 주변을 봤을 때, 조선이 자주적인 위치를 지키며 유지했을 거란 생각을...

형식과 본질 Form and ess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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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몸이 뻐근해서 스트레칭이나 운동 관련 영상을 볼 때가 많다. 익숙치 않은 동작인지라 영상을 보고 말을 들으면서 따라한다. 이처럼 눈으로 영상에 나오는 동작을 파악하고, 귀로 들리는 언어를 통해 몰랐던 세계로 들어가 유익함을 얻을 수 있다. 영상 뿐만이 아니라 글, 책, 그림 등도 미지의 세계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글자 알아보기, 그릇에 담긴 과자의 갯수를 알아보는 거나 책상 높이를 알아보는 일은 형식만 갖추어지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다. 컴퓨터에 파일 설치하는 거나 인터넷 쇼핑, 자기가 평상시에 다니던 곳에 가는 일, 빗자루 쓸기 같은 단순업무나  특정 분야에서 기본적인 실력 갖추는 일은  형식만 갖추면 충분히 형식대로만 따라하면 된다. 복잡한 부분도 단순한 형식으로 분해하고 합치면서 세상을 파악하고 일을 이룰 수 있다. 언어, 산술학, 기하학 등 많은 학문들의 규칙과 기호들을 만들어 놓으므로써 직관으로 파악하던 세계보다 더 넓은 세계를 알았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직관이란 것은 사람마다 컨디션 따라 편차가 심하고, 기록에 남기지 않는 한 휘발성이 상당히 강한 요소이므로, 편차와 휘발성을 줄여 지식을 안정적으로 담는 그릇의 역할을 형식이 하고 있다고 본다. 형식이 미지의 세계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세상을 파악하는데 형식만으로 가능한지, 형식만으로 일을 이룰 수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형식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방법은 기존의 형식을 조합시켜 또 다른 형식을 만들어내어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형식 체계는 통상적으로 이론 체계라고도 볼 수 있다.  이론의 기본이 공리와 정의이고, 이 안에 있는 기본 요소들을 연산해서 새로운 세계를 파악하는 식이다. 연산이란게 그리고, 또는 같은 접속사를 연결하는 식이다. A라는 형식과 B라는 형식을 결합해서 C라는 형식을 이끌어냈다...

악연 Negative karmic bond

혼자 동떨어진 곳에 살지 않는 이상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 엮일 수 밖에 없다. 엮이는 사람들 중에 좋다 생각드는 사람도 있고, 나쁘다 생각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뭐 좋은 사람만 만나고 살 수 있다면야 참으로 좋겠지만, 인생이 뭐 마음가는대로 돌아가는가? 나쁘다 생각되는 사람 중에 한 번 보고 말 관계면, 그냥 만나지 않으면 되니 별로 신경 쓸 게 없다. 물론 자주 색다른 나쁜 인간을 만나게 되면 얘기가 조금 달리지지만 말이다. 하지만 가장 골치를 썩이는 경우는 계속 만나야 하는 나쁜 사람이다. 악연의 정의를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관계가 지속되는 나쁘다 생각되는 사람을 얘기하면 맞지 않을까 생각든다. 악연이란 개념이 상대적이라 할 수 있지만, 상대적이라고 해서 없는 개념으로 치부하고 무시할 만한 것은 아닌 듯 하다. 이상하게 이해관계나 취향이 안 맞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뭐, 서로 타협하거나  자신이든 상대방 쪽이든 일방적으로 맞춰주는 방향으로 가서  악연을 없애는 방법도 있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타협이란 것은 서로가 참고 감내해야 하는 게 있다는 얘기이므로, 본디 자신이 갖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 리듬과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즉, 자신에게 맞는 흐름의 방향이 있으면, 방향을 바꿔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얘기이다. 즉, 스트레스가 누적된다는 얘기이다. 우리가 육체적인 부분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지만, 정신적 요소인 인내심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것으로 착각할 수가 있다. 하지만 아니다. 정신적 요소도 우리 몸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물리적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와 유리된 세계가 아니라는 관점에서 보면 스트레스 누적으로 몸과 정신이 피폐함을 가져오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서로가 만나는 빈도가 높을수록 이런 속도가 더 빨라지게 되며, 관계가 지속적이기 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자 People who cannot catch context

살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불평을 하거나 대화 속에 없는 또 다른 사람에 대한 불만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자의 경우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전에는 안 그랬는데 변했다 같은 얘기일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나만 시킨다, 나만 꾸중 듣는다 같은 얘기가 될 것이다. 한 번 생각을 해보자. 다른 사람이 어떤 반응을 하든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면 이게 정상적인 사람의 반응일까? 특정인만 일을 시키고 꾸중하는 현상은 아무 이유없이 나왔을까? 저런 소리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관점에서만 현상을 보기 때문에  저런 반응들이 나온다고 본다. 역지사지가 되지 않고,  평소에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지 않으니 맥락을 잡지 못한다는 얘기가 되겠다.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처음 본 상대에게 아주 친절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무례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웬만하면 좋게 넘어가거나 할 것이다. 괜히 적을 만들어 인생을 피곤하게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어리석고 멍청한 짓이 한 두번으로 끝나서  피해가 거의 없으면 부드럽게 넘어갈 것이다. 문제는, 그런 행위가 지속적이고 피해가 자신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되었다면 그걸 가만히 참고 있을 수 있겠는가? 이전과 다른 반응을 보이며 경고를 하여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반응이 그러하면, 다른 사람도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을 때  동일한 매커니즘으로 반응을 보일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처음 말한 부분의 후자의 경우도 한 번 생각해보자. 지속적으로 자기 할 일을 잘 해온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웬만한 쓰레기가 아니고서야 그 사람에게 일일히 간섭하고 일 시키는 일은 없다. 타인에게 개입하는 일은 껄끄럽기 때문에 웬만하면 안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잘못을 해도 막대한 피해를 끼...

버스 안에서 본 오지랖 A nosey parker on a bus

필자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가고자 버스를 타는 중이었다. 한 여자가 아이와 같이 버스를 탄 때에, 노인 한 명이 앞에 앉아있는 젊은이에게 강압적으로 일어나라며, 젊은이가 앉는 자리가 아니라는 소리를 했다. 그 여자가 아이를 대동하고 있으니 양보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 노인의 말에 젊은이는 일어나긴 했지만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마 안가 젊은이는 목적지에 다달아 내렸고, 그 이후에 그 노인에게 날카롭게 흘기는 모습을 보였다. 아침부터 이래라 저래라 하는 소리를 들으니 결코 유쾌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필자는 노인에게 좋은 평가를 해줄 수 없다. 일단 돈 내고 버스에 탄 이상 자리가 있을 때 앉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노약 자석이라 할 지라도 그건 배려석이지, 의무적으로 양보하는 좌석이 아니기에 양보를 강요할 수 없다. 그리고 당사자가 양보를 요구하지 않았는데, 제 3자가 양보를 요구하는 꼴도 웃기는 상황이다. 자기가 버스에 전세 낸 것도 아니고 다같이 돈 내고 타는 입장인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젊은 사람에게 양보해라 마라 할 수 있느냐 말이다. 아이를 동반한 여자가 힘들어 보이면 자기가 양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면 젊은 사람 입장에서 그 노인에게 양보를 해줄 가능성이 높다. 자기가 솔선수범해서 행동하면, 분위기도 좋고 자기 평판도 좋아지는데, 그러지 못해 다른 사람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어찌보면 이 노인은 앞만 보고 여유없이 바쁘게 살아와서 추상적 개념에 대한 분류가 잘 되지 않은 것 같다. 어찌보면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개인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해서 오지랖 부리는 건 사람 간에 기본 예의가 없는 일이다. 아무리 자기보다 젊은 사람한테라도 그 자의 개인 권리를 침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못배웠어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는 사람이면 다른 사람에게 사소한 걸로 소위 '...

언어 교육에 대한 단상 A short thought about language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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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비해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면서 외국인과 접할 기회가 많아진 것 같다. 기업과 국가같은 공적인 영역은 물론이고, 개인과 개인간의 교류도 국제적인 경우가 꽤 있다. 필자의 경우만 봐도 영어를 잘 하지 못하지만, 실제로 외국인 친구를 만나 얘기한 적이 있으며, 통신으로는 거의 매일 대화를 할 정도가 되었으니, 외국어가 아주 먼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외국어를 할 수 있으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꽤 있을 것인데, 요즘 통신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전세계의 정보를 편하게 찾을 수 있어, 외국어를 할 수 있는 능력대로 많은 정보를 찾고 지식을 쌓아 나갈 수 있다. 하다 못해 야동을 찾더라도 외국어를 할 줄 알면, 우리나라 웹하드 같은 곳에 있는 거 이상으로 자기 취향에 맞게 능동적으로 좋은 것을 찾을 수 있다. 처음에 들었던 필자의 예 처럼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더 나아가 외국인과 일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릴 때 부터 이중언어를 써야하냐? 그건 또 아니라고 본다. 외국어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언어생활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람은 소리를 낼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내는 소리가 언어이고, 아무렇게나 표현한 낙서수준의 그림을 언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럼 언어는 무엇인가? 세상에서 인식한 걸 남들이 알아보게 표현하려면 상호 간에 표현 질서를 정립해야 한다. 소리나 그림에 개념 정립을 시켜 질서를 만들어 그 질서를 이성을 이용해 배열시킴으로써  타인이 알아먹을 수 있는 말과 글이 언어가 될 것이다. 질서라는 건 개념 정립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머릿 속에 들은 확실한 개념이 없으면  제대로 된 언어 사용을 못한다는게 필자의 입장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언어 사용이란 것은  개념 정립과 작용 및 본질 파악, 질서에 따른 표현을 포함한다는 게 앞의 설...

주입식 교육 Cramming education

흔히들 교육의 문제점을 얘기할 때, 주입식 교육이 문제라는 말을 많이 한다. 주입식 교육 때문에 자라나서  능동적이지 못하느니, 치우쳐진 사실만 알았느니 결국에 남는 게 없다느니 하는 불평섞인 소리가 많은데, 과연 주입식 교육이 나쁜 것인가 생각해보자. 주입식 교육이란 단어 자체가 좀 이상해보인다. 교육의 기본은 주입이므로, 교육은 주입이란 의미를 포함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전 포스트 에서 얘기했던 것 처럼 어떤 것에 대한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면, 질문에 대한 설명이 무한히 이어져서 질문에 대한 답을 설명을 못해내는 현상이 생기므로, 해당 이론 체계의 시작인 공리나 정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 대해 해석하고 판단을 하려면, 기본이 되는 공리나 정의는 피 교육자의 머리 속에 주입시킬수 밖에 없다. 'ㄱ'이게 '기역'이라고 정의된 이상 주입을 시켜야지, 왜 이름이 저런지 얘기하는 건  그냥 스토리 하나를 억지로 더 주입시키는 일이 되지 않는가? 교육에서 주입은 반드시 있어야하는 불가피한 일이다. 교육이란 단어에 주입식이란 수식어를 굳이 붙여가며 용어를 만든 이유를 생각해보자. 어떤 행위에는 응당 행위를 주체하는 자와 주체가 하는 행위에 이끌리는 자가 있다. 동사에 주어와 목적어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교육도 교육을 주체하는 자와 교육을 받는 자가 있는데, 우선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같이 생각해보고, 주최하는 측과 피 교육자 측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살펴보겠다. 주최하는 측은 교육 시스템이나 교육자 정도로 볼 수 있고, 교육 받는 대상자는 피 교육자 혹은 학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교육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므로  교육 메커니즘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는바, 교육의 과정을 아는대로 간단하게 얘기하면, 교육 시스템에 의해서 교육자가 피 교육자에게 지식을 주입시키는 과정이 ...

세계 공용어 World common 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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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는 여러가지 언어가 있다. 일단 필자의 모국어인 한국어가 있겠고, 통상적으로 대한민국에 살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영어도 있겠고, 이웃 나라의 언어인 중국어와 일본어도 있다. 그 외에도 세계에 수없이 많은 언어가 있다. 그럼에도 세계 공용어는 영어라고 한다. 출처 : 에스놀로그(22판), 2019.2.21.) 일단, 표를 보면, 영어 사용인구가 가장 많은 것은 아니다. 사용 인구 상으로 보면, 1위가 중국어고, 2위가 스페인어이다. 영어는 중국어, 스페인어 다음으로 4억 조금 안되는 인구가 쓰는 걸로 나와있다. 사용 국가 수를 보면, 확실히 영어가 137개로 압도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영어의 가치가 상당히 높은 것 같다. 영어의 가치는 세계 1위로 책정이 되었는데, 2위인 독일과도 2배 이상 차이이다. 확실히 이런 사실들을 보면, 영어가 세계 공용어라는 사실이 더욱 체감되는 것 같다. 이런 사실들은 아마 과거 패권국인 영국과 현 패권국인 미국의 언어가 영어이기 때문이 클 것이다. 그리고 과거 영국은 식민지를 많이 거느렸으므로, 영어 사용 국가 수가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어는 사용인구가 많은데 공용어가 될 수 있을까? 사용되는 국가 수도 적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중국어 같은 경우에는 북경 표준어를 공통적으로 배우고 있지만, 지역별로 방언이 많이 심한 것 같다. 거의 다른 언어로 봐도 될 정도로 심한 것 같다. 그리고 문자도 걸림돌이 될 것 같다. 중국은 표의 문자인 한자를 쓰고 있는데, 저 위에 있는 나라들 중  음절 문자와 표의 문자를 섞어 쓰는 일본 빼고  거의 다 표음 문자를 쓰고 있다. 문자를 배우는데 많은 저항이 있을 것이다. 저기에 있는 강대국들이 거의 유럽 국가들인데, 러시아를 제외하곤 로마 자를 쓰고 있다. 로마 자는...

나이가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간다? The older people get, the faster time goes?

나이 많은 사람들이 흔히 나이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간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꼭 나이 많은 사람들이 아닐지라도 동일한 느낌을 받는 모양이다. 젊은 사람들 입에서도 그런 소리가 나오니 말이다. 위에 말을 동일하게 할지라도, 말하는 빈도나 태도를 보면, 나이든 사람이 진심으로 깨달은 상태에서 말하는 것 같다. 도대체 저런 느낌을 왜 받는지 생각해보았다. 사람의 움직임 속도는 빛의 속도에 비해 미미하기 때문에 상대성 이론을 적용해봐야 시간흘러가는 차이는 거의 없을 것이고, 움직이는 속도는 젊은 사람이 오히려 더 빠를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느낌을 어떻게 받는지 매커니즘을 파악해야하지 않을까? 먼저, 저 문장이 객관적인 판단인지 주관적인 판단인지 봐야할 것이다. 저 말은 객관적인 지표를 토대로 판단했다기 보다 자기의 느낌을 말한 것일 것이다. 느낌이란 건 신체에 받은 자극이고, 느낌을 말로 뱉은 건 그에 대한 표현일 것이다. 주관적 판단은 머리 속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신체에 자극이 되는 것이고, 머리 속의 기억으로 지나온 시간을 파악하면, 엄청 빠른 속도로 재생될 것이다.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용량에 한계와 단위 시간당 회상해낼 수 있는 능력의 한계로 지속적인 회상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인생의 느낌을 판단하려고 회상하는 시간은 지극히 짧기 때문에 편집된 기억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화하다가 지나가는 얘기로 자신의 일생을 회상하는 얘기를 한다면, 인간의 회상 시간의 편차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회상 시간을 상수로 넣고, 이를 분모에 넣어보고, 지나온 세월을 분자에 넣는다면, 느끼는 세월의 속도는 지나온 세월/회상 시간 이런 식으로 될 것이다. 나이가 많이 먹었으면, 분자에 해당하는 지나온 세월이 커질 것이고, 분모는 거의 일정하니 세월의 속도가 빠르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또 하...

배려심 없는 젊은이? Young people without thoughtful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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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기관에서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이 나온 모양이다. 젊은 남성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린 모양인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서 많이 떠돌아 다니는 짤인데, 이미 올 3월에 한겨례 일보에서 나온 기사  내용의 일부이다. 이게 왜 최근에 그렇게 난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기 내용에서 나온 것 처럼 젊은 남성들의 인식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냐는 거다. 위에 나온 내용 차례대로 살펴보면, 남북아이스하키 팀 같은 경우에는 올림픽 한참 전부터 같이 훈련하거나 하지 않고, 급작스럽게 단일팀으로 경기하라고 했으니, 불합리하다 느끼지 않겠는가? 아이스하키에 대해서 잘 몰라도 위 문건의 단일팀이란 단어로 아이스하키가 팀 스포츠 임을 알 수 있다. 팀 스포츠는 개인의 기량도 충분히 있어야 하지만, 팀 워크가 중요하다. 갑작스럽게 팀이 결성이 되었고, 합이 제대로 맞추어 지지 않았을텐데 팀 성적이 좋을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팀 성적을 위해 기존 맴버로 팀 운영을 한다고 할 때, 성적이 좋다고 해도,  북한 쪽은 팀 업적을 공짜로 흡수하는 거 아닌가? 선수나 감독에겐 스포츠 결과가 곧 커리어인데, 외부 사람이 자신의 커리어를 날로 흡수하거나,  망치는 현상을 반가워 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 회사에서 보이는 월급 루팡들이나 학생이라면 조별과제 무임 승차하는 인간들을 보면 저런 현상을 절대로 옳게 돌아간다 생각치 않을 것이다.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인식을 국가주의에 대한 개인주의의 도전이라고 해석했다. 일단 무슨 주의라는 것은 사람이 쓰는  드라이버, 망치같은 도구로 인식을 해야지. 이걸 종교처럼 생각해선 안 될 것이다. 선악의 기준으로 두어서도 안 되고 말이다. 남북단일팀이란게 국가주의가 합당히 쓰였던 일인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