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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교육정책 발표 Announcement about education policies from Liberty Korea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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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오는 4월 15일이 총선을 대비해서  오늘 교육 정책을 발표한 모양이다.  바뀌었던 여러 교육 정책을 이전과 같이 회복시킬 계획으로 보인다. 자사고, 외고나 정시 비중 늘린다는 얘기를 보면 말이다. 일단 교육 정책에 대한 얘기들을 보면 좋은 전략으로 보인다. 지금 제도를 보면 잡음들이 꽤 나타나지 않았는가? 개인적으로 취학연령 낮추는 방안도 괜찮아 보인다. 애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안보내는 부모들 거의 없지 않는가? 이럴 거면 차라리 학교를 빨리 보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차후에 사회 생활도 더 빨리해서 선거 연령 낮아진 거에 대한 대비책도 되고 말이다. 여러 좋아보이는 말이 있어서 크게 가타부타 할 것도 없어보인다. 9월 학기제로 하는 건 저항이 클 것 같긴하다. 보니까 서구권에서 돌리는 시스템 같은데, 이 시스템으로 할 때 어떤 식으로 시스템을 짤 지 궁금하다. 서구권은 9월부터 6월 정도까지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방학같은 짧은 방학 빼고는 거의 스트레이트로 진행하는 식 아닌가? 시스템 돌리는 것도 문제지만 한국 특유의 세는 나이로 따지는 문화 때문에 한국은 나이가지고 말을 높힐지 낮출지 판단하지 않는가? 여기에서 오는 혼란에 대한 대책은 있는지 모르겠다. 잘 정착된다면야 만 나이를 실질적으로 쓰게되는 풍토가 되겠지만 말이다. 이게 계기가 되어 만 나이를 쓰고  한 살 차이로 높히고 낮추는 문화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대신에 상호존중에 대한 관념이 각 개인마다 제대로 박혀야 하지 않을까? 회복시키는 부분도 있지만 필자 생각에 꽤 혁신적인 부분도 있어서 이리저리 말을 해봤다.

언어 교육에 대한 단상 A short thought about language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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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비해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면서 외국인과 접할 기회가 많아진 것 같다. 기업과 국가같은 공적인 영역은 물론이고, 개인과 개인간의 교류도 국제적인 경우가 꽤 있다. 필자의 경우만 봐도 영어를 잘 하지 못하지만, 실제로 외국인 친구를 만나 얘기한 적이 있으며, 통신으로는 거의 매일 대화를 할 정도가 되었으니, 외국어가 아주 먼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외국어를 할 수 있으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꽤 있을 것인데, 요즘 통신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전세계의 정보를 편하게 찾을 수 있어, 외국어를 할 수 있는 능력대로 많은 정보를 찾고 지식을 쌓아 나갈 수 있다. 하다 못해 야동을 찾더라도 외국어를 할 줄 알면, 우리나라 웹하드 같은 곳에 있는 거 이상으로 자기 취향에 맞게 능동적으로 좋은 것을 찾을 수 있다. 처음에 들었던 필자의 예 처럼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더 나아가 외국인과 일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릴 때 부터 이중언어를 써야하냐? 그건 또 아니라고 본다. 외국어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언어생활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람은 소리를 낼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내는 소리가 언어이고, 아무렇게나 표현한 낙서수준의 그림을 언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럼 언어는 무엇인가? 세상에서 인식한 걸 남들이 알아보게 표현하려면 상호 간에 표현 질서를 정립해야 한다. 소리나 그림에 개념 정립을 시켜 질서를 만들어 그 질서를 이성을 이용해 배열시킴으로써  타인이 알아먹을 수 있는 말과 글이 언어가 될 것이다. 질서라는 건 개념 정립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머릿 속에 들은 확실한 개념이 없으면  제대로 된 언어 사용을 못한다는게 필자의 입장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언어 사용이란 것은  개념 정립과 작용 및 본질 파악, 질서에 따른 표현을 포함한다는 게 앞의 설...

주입식 교육 Cramming education

흔히들 교육의 문제점을 얘기할 때, 주입식 교육이 문제라는 말을 많이 한다. 주입식 교육 때문에 자라나서  능동적이지 못하느니, 치우쳐진 사실만 알았느니 결국에 남는 게 없다느니 하는 불평섞인 소리가 많은데, 과연 주입식 교육이 나쁜 것인가 생각해보자. 주입식 교육이란 단어 자체가 좀 이상해보인다. 교육의 기본은 주입이므로, 교육은 주입이란 의미를 포함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전 포스트 에서 얘기했던 것 처럼 어떤 것에 대한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면, 질문에 대한 설명이 무한히 이어져서 질문에 대한 답을 설명을 못해내는 현상이 생기므로, 해당 이론 체계의 시작인 공리나 정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 대해 해석하고 판단을 하려면, 기본이 되는 공리나 정의는 피 교육자의 머리 속에 주입시킬수 밖에 없다. 'ㄱ'이게 '기역'이라고 정의된 이상 주입을 시켜야지, 왜 이름이 저런지 얘기하는 건  그냥 스토리 하나를 억지로 더 주입시키는 일이 되지 않는가? 교육에서 주입은 반드시 있어야하는 불가피한 일이다. 교육이란 단어에 주입식이란 수식어를 굳이 붙여가며 용어를 만든 이유를 생각해보자. 어떤 행위에는 응당 행위를 주체하는 자와 주체가 하는 행위에 이끌리는 자가 있다. 동사에 주어와 목적어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교육도 교육을 주체하는 자와 교육을 받는 자가 있는데, 우선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같이 생각해보고, 주최하는 측과 피 교육자 측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살펴보겠다. 주최하는 측은 교육 시스템이나 교육자 정도로 볼 수 있고, 교육 받는 대상자는 피 교육자 혹은 학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교육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므로  교육 메커니즘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는바, 교육의 과정을 아는대로 간단하게 얘기하면, 교육 시스템에 의해서 교육자가 피 교육자에게 지식을 주입시키는 과정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