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과 인간이 느끼는 고통은 같을까? Is suffer between beast and human same?


길 지나다니다 보면 줄에 묶여 다니는 개들을 보고
혹은 우리 속에 있는 소나 돼지, 동물원에 있는 짐승들을 보고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짐승들의 상황을 사람에 맞춰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
평생을 구속된 채로 산다면 고통이 상당히 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짐승은 사람의 먹을 양식이 되기 위해 죽으므로
인간이 그들을 죽이는 절차가 있을 것이다.
그 절차를 직접 본다면 아마 위의 사례보다 더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육체적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니 고통도 어마어마 할 거라고 생각든다.
특히 그 짐승을 인간에 대입하면 그 정도는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짐승의 고통과 인간의 고통의 정도가 같은지도 생각할 수 있다. 
인간과 짐승의 특성이 다르니 당연히 다른 점이 있다는 생각은 타당한 생각일 것이다.
그러면 인간과 짐승의 특성을 차이점을 통해 생각해보자.

인간과 다른 짐승과 비교해봤을 때,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두 발로 걸어다니는 짐승들도 있고,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반응하기도 하며,
짐승들도 나름대로 의사소통을 하며 살아가니 말이다.

그럼에도 있는 인간과 짐승의 차이점은
지금 당장 신체감각으로 느껴지지 않는 부분을 인지한다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면, 짐승이 어제 먹었던 먹이를 지금 회상할 수 있겠는가?
소통을 한다고 쳐도 신체 감각으로 인지되지 않는 
며칠 전에 봤던 지형지물에 대해 얘기를 하겠는가?
사냥감의 패턴을 파악하고
오늘의 실패를 반성하며 다음 날 어떤 식으로 사냥을 할 지, 
대형을 어떻게 짜서 몰아갈 것인지
경우의 수를 파악하면서 개선된 작전 계획을 짜겠는가?
기존 재료로 전혀 새로운 형태와 기능을 갖춘 도구를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짐승들은 이런 거 못할 것이다.
저런 예시들은 추상적 사고로 만들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추상적 사고는 형식을 넘은 통찰과도 연결된다.
신체 감각으로 인지되는 정보를 형식이라 할 때,
동물은 신체 감각으로 인지되는 정보를 연산해서 반응할 수 있다.
즉, 동물은 형식 연산은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통찰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나눠서 파악해볼건데,
우선 형식 연산의 비약으로 나타난 통찰과
새로운 형식을 만드는 통찰로 볼 것이다.
원숭이가 몇 분동안 발악하다 막대기를 보더니 떨어뜨리는 일이
전자의 경우가 될 것이고,
인간이 문자 체계를 만드는 일이 후자의 경우가 될 것이다.

짐승이 전자의 통찰은 할 수 있어도 후자의 통찰은 못한다는 얘기이다.

인간과 짐승의 차이를 봤으니 이로부터 고통의 차이를 생각해보겠다.
밧줄에 묶여있거나 갇힌 상황이면,
그 이전에 자유로운 상황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될 때는 고통이 있겠지만,
짐승은 추상적인 사고가 없어 이전 일을 기억 못할 것이므로
시간이 지나면 자유로운 상황에 대한 생각이 자체가 없을 것이다.
그냥 지금 처해있는 순간에 신체에서 오는 감각에만 반응할 뿐이다.
같은 상황일 때 자유로웠던 기억이 있는 상태이고 
그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인간과는 다르게 고통이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인간은 계속 자유로웠던 시기를 그리워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짐승은 그런 거 생각도 안 하니 스트레스가 거의 없을 것이다.

도축 당하는 것도 인간이라면 시간 흐름에 따른 예상이 가능하므로
도축 당하기 전부터 고통이 어떤지 상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짐승은 그런 예상을 하지 않으니 고통을 줄 때만 스트레스 받고 끝일 것이다.
이 말은 짐승 새끼 죽어도 싸다는 얘기가 아니라
장시간 고통을 줘서 죽이니 문제가 되는 거지
짧은 시간에 단 번에 죽일 수만 있으면 크게 불쌍하게 여길 점은 없을 거란 말이다.
장시간 고통을 받아 죽는 짐승에겐 연민의 감정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것일 거다.

인간과 짐승의 차이를 통해 둘의 고통을 같이 볼 것인지에 대해 얘기했다.
짐승은 당장 신체에 주어지는 고통에만 스트레스 받지만
인간은 그런 거 외에도 시공간을 넘나드는 생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으므로
같은 상황이라도 둘이 느끼는 고통은 다르다는 것이다.
고통받는 동물에게 불쌍한 감정을 느끼는 건 당연한 생각이지만,
그 정도를 같이 봐서 잘못된 논증이나 판단을 하지 말고
타인에게 아전인수 식 논증으로 호도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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