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과 본질 Form and essence



요즘 몸이 뻐근해서 스트레칭이나 운동 관련 영상을 볼 때가 많다.
익숙치 않은 동작인지라 영상을 보고 말을 들으면서 따라한다.
이처럼 눈으로 영상에 나오는 동작을 파악하고,
귀로 들리는 언어를 통해 몰랐던 세계로 들어가 유익함을 얻을 수 있다.
영상 뿐만이 아니라 글, 책, 그림 등도 미지의 세계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글자 알아보기, 그릇에 담긴 과자의 갯수를 알아보는 거나
책상 높이를 알아보는 일은 형식만 갖추어지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다.
컴퓨터에 파일 설치하는 거나 인터넷 쇼핑,
자기가 평상시에 다니던 곳에 가는 일, 빗자루 쓸기 같은 단순업무나
 특정 분야에서 기본적인 실력 갖추는 일은 
형식만 갖추면 충분히 형식대로만 따라하면 된다.

복잡한 부분도 단순한 형식으로 분해하고 합치면서
세상을 파악하고 일을 이룰 수 있다.
언어, 산술학, 기하학 등 많은 학문들의 규칙과 기호들을 만들어 놓으므로써
직관으로 파악하던 세계보다 더 넓은 세계를 알았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직관이란 것은 사람마다 컨디션 따라 편차가 심하고,
기록에 남기지 않는 한 휘발성이 상당히 강한 요소이므로,
편차와 휘발성을 줄여 지식을 안정적으로 담는 그릇의 역할을 형식이 하고 있다고 본다.

형식이 미지의 세계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세상을 파악하는데 형식만으로 가능한지,
형식만으로 일을 이룰 수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형식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방법은
기존의 형식을 조합시켜 또 다른 형식을 만들어내어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형식 체계는 통상적으로 이론 체계라고도 볼 수 있다.
 이론의 기본이 공리와 정의이고,
이 안에 있는 기본 요소들을 연산해서 새로운 세계를 파악하는 식이다.
연산이란게 그리고, 또는 같은 접속사를 연결하는 식이다.

A라는 형식과 B라는 형식을 결합해서
C라는 형식을 이끌어냈다고 하자.
그러면, A와 B로 C를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뭔가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은
해당 형식이 어느 것이든 간에 다른 형식과 연결되어있다는 얘기이다.

이론 체계가 있고, 거기의 형식이 모두 참이면,
그 이론 체계의 형식으로 결합해서 또 다른 형식을 이끌 때,
새로 나온 형식은 참이 되게 될 것이다.
이런 모순이 없는 이론 체계만으로 세상을 다 파악 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과연 그렇게 될 지는 모르겠다. 한 번 살펴보자.

모순이 없는 이론 체계 @에서
형식 F가 있어서 'F는 증명 불가능'의 의미가 있다고 하자.
이론 체계 @는 모순이 없으므로, 거기에 속한 형식 F는 참이고,
그렇기 때문에 F는 참이면서 증명 불가능한 형식이 된다.
증명한다는 게 형식을 연산으로 연결한다는 얘기니까
F하고 연결되는 형식은 이론 체계 @ 에서 없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굳이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런 식이지 않을까한다.
그림이 형편없긴 하지만 그림을 설명하면,
예를 들어, A와 B를 연산해서 C가 나오고,
B와 D는 K를, D와 E는 H를 도출 시킨다는 의미이다.
이런 식으로 이론 체계 @의 형식들을 서로 연산해서 다른 형식들이 나오는데,
이론 체계 @ 안에 있는 형식을 어떻게 연산해도
이론 체계 @안에 있는 F로 유도되지는 않는다는 걸 표현했다.
그러면 F는 증명 불가능이란 의미를 가진 형식 F는 참인 형식이 되지 않는가?
결국 형식만으로 모든 것을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단 얘기이다.

한계가 있긴 하지만 지금의 형식이 우리가 밝혀낼 수 있는 한계는 아닐 것이다.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서 밝혀야 한다면,
이러려면 기성 형식에서 보다 더 나아간 생각을 하거나
그 가운데 나오는 통찰을 통해서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작업은 형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본질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위에서 언급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질이라는 것이 인간의 오감만으로 바로 파악할 수 없는지라
통찰이라는 요소를 첨가하여 알아내야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개념, 사물, 현상 같은 것들은
혼자 존재하지 않고, 다른 것들과 서로 상호작용하므로
한 가지 요소만으로 파악할 수 없기에
맥락을 잡고 입체적으로 알아봐야 한다.
그러면 해당 개념, 사물, 현상의 특징, 작용 등을 볼 수 있다.

결국 세상을 파악하는데 형식만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통찰을 쓸 수 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인간이 쓸 수 있는 에너지와 물리적인 면은 한계가 있어서
통찰을 무한정 쓸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을 보완하고 두뇌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생긴 도구가 형식인 것인데,
도구에 얽메이면, 본질로 나아가는 길 중간에 머무르는 모양이 된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고 형식과 통찰이라는 도구를 지헤롭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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